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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고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과 참는 것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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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정해진 이해심의 크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천성'이라는 것에 의해 결정이 될 것이고.

나는 이 '이해심'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 혹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가끔 이 이해심의 크기를 넘어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참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불변의 이해심' 영역이 있고 '가변의 참을성' 영역이 있다는 뜻이다.

(참을성이란 표현이 완전히 적절하진 않지만 딱히 더 좋은 표현이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변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유사한 상황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 늘 같지만은 않은 것이리라.


내가 기분이 좋고 여유가 있을 때는 참을성의 영역이 증가한다.

사소한 주변의 잘못은 웃어 넘길 수 있고 오히려 괜찮다고 격려까지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평소에 그냥 넘겼던 작은 실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화까지 내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화를 내면 늘 돌아서서 후회하면서 왜 자꾸 화를 내게 될까.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늘 같았다. 달랐던건 내 자신이다.

같은 행동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아빠를 보면서 아이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내가 싫어하는 '눈치보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을 줄이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 특히 가까운 사람들 - 그랬던 적이 있겠지.


누구나 이해심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이해심'이 그리 큰 사람같진 않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란색 영역을 늘 여유있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같은 상황이 왔을 때 후회하지 않을 행동을 할 수 있게끔.

내 욕심을 줄이고 조금 더 타인을 배려할 수 있게끔.


쉽진 않겠지만 살아본 바로는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삶에 대한 만족감과 충실감은 훨씬 더 높아졌다.


이해심 자체가 넓은 사람, 혹은 참을성의 영역을 넓혀 이해심의 영역을 확장한 사람.

행동에 대한 반응이 일관적이라 타인이 눈치보게끔 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부르는게 아닐까.


나도 되고 싶다. 한결같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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